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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그는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성과 폭력성을 규탄하면서 그 중에서도 가장 심한 국가가 제정 러시아라고 단정짓고 있다.

이러한 제정 러시아의 진출을 동양에서 막고 물리칠 수 있는 나라는 당시로서는 일본이었고, 그래서 한국 중국의 지도자와 인민들이 일본을 도와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도록 도왔었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갈파하고 있다.

“이 때를 당하여 만일 한국과 청나나 백성들이 일치단결하여 옛날의 원수를 갚으려 하여 일본을 물리치고 러시아 편에 협조하였다면, 일본은 대첩을 거둘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양국의 백성들이 일본 병사를 환영하고 그들의 군수품을 운반해 주고 도로도 닦아주고 적진의 동태를 살펴 보고하는 등의 노고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이 승리한 것이라고 하였다. 더욱이 일황이 선전포고 조서에 “동양평화 유지와 대한독립을 공고히 한다” 하고 대의를 밝혔기 때문에 이를 믿고 적극적으로 도와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제는 러일전쟁의 결과 한국을 탄압하고 만주의 장춘 등 남의 땅을 점거하니 러시아보다 더 심한 만행이었음을 규탄하고 있다. 더욱이 용과 범의 위세를 가지고 고양이 뱀 따위의 행동을 하는 섬나라 일본의 행동에 일침을 가하면서 서세동점의 국제정세 속에서 동양 3국이 뭉쳐서 대적하여야 할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같은 황인종인 이웃나라의 가죽과 살을 벗기고 베어서 차지하려고 하니 이는 어부지리를 서양 세력에게 그대로 주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일본이 한국과 청나라의 영토를 침범, 지배하여 동양평화를 깨뜨린다면 한ㆍ청의 지도자 백성들이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을 경고하고 안중근 자신은 먼저 이토 히로부미를 포살하는 전쟁을 솔선수범하는 것이며, 이를 통하여 한국ㆍ중국ㆍ일본의 대표자가 여순구에 모여 평화회의를 개최하자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 갑오년(1894)의 청ㆍ일전쟁을 말할지라도 당시 조선에 쥐 같은 도적배들이 동학당의 소요를 계기로 청ㆍ일, 양국의 병사를 끌어 들이고는, 까닭 없이 싸움을 벌여 서로 충돌케 되었다.” 라고 청일전쟁의 성격을 규정하면서 전란의 원인이 좀도둑 동학당의 소요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오늘날의 입장에서 볼 때 논란의 여지가 다분히 있으나 당시 안중근은 부친 태훈공을 도와 동학 농민군을 토벌하는 입장에서 동학 농민군의 반란이 곧 외세를 끌어들이는 결과를 가져온 데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에서 평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어서 그는 일본이 승리한 이유와 과정에 대하여 “일본은 유신 이후로 민족이 화목하지 못하고 전쟁이 그칠 날이 없었다. 그러나 외교상의 경쟁이 일어나게 되자 그들 동족간의 불화는 하루 아침에 화해되고 다같이 연합하여 한 덩어리 애국당을 만들어 이같이 개가를 올린 것이다. 이것은 소위 ‘친절한 남이 경쟁하는 형제만 못하다’는 말과 같다” 라고 평양전투와 아산만의 풍도해전에서 승리한 일본군이 압록강 넘어 요동반도와 여순을 함락시켰다. 그리하여 마관조약에 의하여 대만과 요동반도를 할양 받고 2억 원 배상금을 받았으니 일본으로서는 메이지 유신 이후 기념될 만한 사건이라 고 평가했다.

이에 반하여 안중근은 물산이 풍부한 영토와 인구가 수십 배 되는 청국이 패배한 이유가 무엇인가를 반문하면서 “예로부터 청국인은 중화대국으로 자칭하고, 외방을 이적이라 부르며 교만하고 오만하기 이를 데가 없었으며, 더구나 권신이나 척족들이 제멋대로 국권을 농간 하여 백성들의 원한을 맺고 상하가 불화하였으니 이같이 봉변을 당하는 것”이라고 하여 자만과 권위주의, 국론의 분열, 지배계층에 대한 불신, 정치의 문란 등이 전쟁에 있어서 참패를 가져왔다고 분석한다.

3국 간섭에 의하여 제정 러시아가 일본을 견제하면서 청국이 요동반도를 환부 받게 만들어 주면서, 여순 조차를 성공시켜 부동항을 얻기 위한 남하정책의 실상을 비판하고, 그 모든 것이 일본의 청국과의 전쟁 때문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러시아는 불과 수년 사이에 민첩하고 교활한 수단으로 여순을 조차한 후에 군항을 확장하고 철도를 복건 했다. 이런 일의 근원은 생각해 보면, 러시아 사람들은 수 십 년 동안 봉천 이남서 대련 여순 우장 등지에 부동항 한 곳을 억지를 써서라도 가지고 싶은 불 같고 밀물 같은 욕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라고 하면서 러시아의 남하정책 실상을 파헤치고 아울러 “그러나 그 이유를 따져 보면 모두가 일본의 과실이었다. 이른바 구멍이 있으면 바람이 들어오는 격이다. 만일 일본이 먼저 청국을 침범하지 않았다면 러시아도 감히 이런 짓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제 도끼에 발등 찍힌 것이었다.” 라고 청일 전쟁의 역사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안중근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의 독립보장과 동양평화를 위해서 일본이 제정 러시아와 전쟁을 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며 한국의 주권을 무시 하고 한국인의 의사를 배반한 한국과 무관한 전쟁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일어난 것에 대하여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 당시 일본은 요행히 연승을 거두었으나 함경도는 아직 거치지 못했고 여순구도 격파하지 못하고 봉천 또한 점령하지 못했던 때였다.

만약 이 때 한국의 관민이 일치단결하여 일어섰다면 을미년(1895) 일본인이 한국의 명성황후를 무고히 살해한 원수를 갚을 수 있었을 것이다. “즉 격문을 사방에 보내고 함경도 평안도 간의 노국 병마와 교통하여 불의에 습격하게 하여 충돌케 하고 청국 또한 상하가 협동하여 전날 의화단 때에 행동했던 것과 같이 하였다면 그들 또한 갑오년(1894)의 숙원(일본군에게 대패함)은 갚았을 것이다.” 라고 하여 한국과 청국이 러일전쟁 중에 일본을 돕지 말고 러시아와 손잡고 일본에 대항하였더라면 동양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그러면서 일본을 상대로 한국과 청국이 서로 다툰다면 이 틈새를 이용하여 영국ㆍ프랑스ㆍ미국ㆍ독일ㆍ이탈리아ㆍ오스트리아ㆍ포르투갈ㆍ 그리스 등이 산동반도 발해만으로 군대를 집결시키면서 위협을 가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일본ㆍ청국이 대항하게 되고 이에 따라 동양은 자멸할 수 밖에 없다고 설파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전감에서 안중근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하여 강한 경종을 주고 있다. “오호라! 자연의 형세를 돌아보지 않고 동종인방을 해치는 자는 끝내 독부의 환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는 같은 황인종이면서 한국을 침략하여 지배하려고 한 일본 제국주의의 대륙침략정책을 전면 공격하여 언젠가는 그 값을 치를 것이라고 강하게 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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