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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진회송병준과 데라우치의 관계
노광수 2017/03/21 458

 

 

 #이 글은 부친과 친구에게 들은 애기로, 신빙성은 없으나 재미로.....

 

 

  1.일진회 윤덕영과 송병준의 관계

          구한말로 애기는 올라가는데.... 송병준의 책사는 "한"씨이고

          윤덕영의 책사는, "방"씨와 "우"씨가 있었는데, 한씨와 방씨가 사돈을 맺고

          송병준의 첩이, "왕"씨가 있었는데, 사촌의 자매를 윤덕영의 첩으로

          한-방가 나서서 맺어 주는데....한씨의 조상은, "한민0"이었고....자손이

          지금의...."한명0"을 쓴다.  윤덕영이 일진회에 가담하는 이유가 된다!!

  2.고조부이신

          노선섭님이 중국에서, 잦은 외선의 침범으로....중국에서 철로 만든 배를

          만들고 돌아오시는데.....황토-열사병에 걸리시어, 1년2개월을 죽다가 병을

          고치시고 배를 만들고 돌아오시는데 약 2년의 세월이 더 소요되고....

          배위에다가 "포"의 받침대를 설치하고, 지금의 야포를 만드시어...

          포의 사정거리는 일반 전투배의 2배 이상의 거리를....침범하는 배들이

          포의 성능을....놀라...침몰...도망가게 되는데....

  3.고향이신 진남포 비석리 19번지에 돌아와보니, 민비는 시해 당하시고 매제이신

          민영환옹은 자결을 하시어....침통하고...한이되시어......

          경복궁 경비대장인 "우범선"의 형제가 책사인, 일진회 윤덕영의 집에

          군사들과 함께 찾아가 우범선의 소재를 알아보니, 일본으로 도망갔다하여

          영친대군과 함께 들어가신, 임시정부 손두환님의 형제인, 손두호-노덕섭님

          께 통발을 보내어 우범선의 행방을 수서문하니....행불이다!!!!

  4.일진회 윤덕영에게 들은 애기,

          1903년 5월에 결성된, 이름과 낙관이 찍힌, 일진회 명단과(이북에 

          있다, 남한은 1904년 5월로 되어있다), 송병준이 "옥쇄"를 데라우치에게

          금좌 20냥에 팔아먹고, 조선을 1억 5천만원에 파는, 괘이한 행태가....

          그 이유인 즉은

  5.데라우치가 초대 주일 공사로, 구한말에 왔을 때에

          송병준과 만날 기회가 있었고, 잦은 만남과 술자리에 친분이 쌓이게 되고

          송병준이 데라우치에게, 조선을 넘기는 조건으로....

          송병준의 사돈 가족의 여식과

          데라우치의 사돈 가족의 남자와 결혼을 하여, 일본으로 들어가고

          우범선이 그 집에 기거를 하여...찾기가 힘이 들었다.

  6. 몇 년 후에,  우범선의 정보를 입수하여...재일 한국청년단에게 넘기어

          우범선을 처던하게 된다.

          그 후에 "운현궁"의 책사이시고, 재일 우리 상단의 1일자인 "신00"님과

          "손두호-노덕섭"님의 자손과 사돈의 인연을 맺고....

          재일 한국청년단과 손-신님이 주축이 되시어 일본에

          "민단"을 만드신다!!!!!!!

          "손광0-신윤0"- 일본의 "광윤사"

          성씨가, 손-노, 신-태- 한국의 "롯테"이다.

          고조부이신 "노선섭"님이 일본으로 건너가....이방자여사의 사돈이신

          "무라야마"님의 주선으로 데라우치에게

          황금400kg을 주고 "옥쇄"를 사오고, 무라야마님이 보관하신

          "훈민정음 목판본"을 황금 600kg을 주고 사와 진남포에 소장하고.....

  7.우리 집안은, 고려때부터 군인 집안으로....훈민정음에 반하여 "이씨" 조선에

          귀하하여 지금도 "충성"을 다 하고 있다!!!!

          군인 집안이라, 삶을 이어오는 가족이 없다!

          남한에는 우리 밖에 없다. 노씨가 남한에서-노광수(본명:盧明題)- 이 후로

          없다!   중국의 칭타오에 계시는 작은 아버님의 자손밖에.....

          부친(노진국님)은 1970년 초에

          극비리에 미8사령관과 미국에 2달가량 다녀오신다.

          스텔스-잠수함 미사일-아파치-사드(등대 프로젝트)......

          스텔스 때문에 미국이 발칵 난리가 난다!!! 일명-"보이지 않는 새"

          때문에......

          부친의 말씀중 기억나는 것을 돌이켜보면

          사드(shank-dry)는

          1단에서 9단까지로, 1-5단까지는 유해하지 않으나, 6-9단부터는

          유해하여, 사람이 사는 곳에는 설치가 않되며.....

          1-5단은 약620km이고 6-9단은 2000km이다. 최대 레이다 거리는

          크기에 비례하나...30m의 크기에 3000km이다. 아무리 기계가 커도

          한계가 3000km이다.

          철탑 구조는 350km가 한계이다....이북의....

  8.안중근 의사의 시신은

          중국의 칭타오의 장보고(한족)의 선산에 계시다. 선산을 칭타오 정부

          에 기증을 하여, 훗날에 있을지 모를 사항에 대비한다 하셨다!!!!

          장보고 자손(장수광-노형희님의 子:장수연)을 찾아야 한다!!!

          1948년에 장수연(연꽃연자)님과 중구의 "유비"님의 자손이 결혼을

          하셨다. 부친은 무기와 지금의 "김책공대"일이 바뻐서 못가시고,

          조부-노형규님과 작은 아버님-노진구님, 형제분들만 다녀 오셨다.

          자손이

          칭타오 정부의 수장이신, "장자량"님과 "유윈산"님 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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